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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씨의 역사
한국에서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한자 등 중국 문물의 수입과 함께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씨족 사회와 그 집단을 통치하는 지배자 계급이 발생함으로써 성씨는 다른 씨족이나 피지배 계급과 구별하기 위한 목적 즉 정치적 신분을 나타내는 표지로 쓰이게 되었다. 성씨를 갖게 된 유래는 신라시대부터 고려 초 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씨가 없었고 고려 태조가 후삼국 통일 후 지방 유력자들에게 성씨를 갖게 한 정책을 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국호 고구려에서 따와 성을 고(高)씨로 하였으며, 주몽은 휘하의 충신에게 극(克)씨, 중실(仲室)씨, 소실(小室)씨 등을 사성(賜姓)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는 시조인 온조왕이 부여에서 남하하였다고 하여 부여(夫餘)씨를 칭하였다. 신라에서는 박(朴)· 석(昔)· 김(金)의 세 성이 설화와 함께 전해져 내려오며, 유리왕 6년에 6부 촌장에게 각각 이(李)· 정(鄭)· 안(安). 손(孫)· 최(崔)· 배(裵)· 설(薛) 등의 성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성이 당대에 실제로 쓰였는지는 의문이며, 외국 역사서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성씨를 가진 한국 사람은 김진흥(金進興) 곧 신라 진흥왕이다. 565년 《북제서》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성씨의 사용은 상층 계급에 국한되었고, 귀족 계급이라도 성을 갖지 않는 인물이 많았다. 또한 중국 유학생이나 무역인 등 외국과 활동이 많은 계층이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다. 삼국 시대를 통틀어 이름은 대부분 고유어를 한자로 취음한 표기이며, 오늘날의 3음절 성명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지증왕의 국호·왕호의 한자어 개정, 법흥왕의 연호· 시호 사용, 경덕왕의 두 음절 지명 개정, 문무 관직명 개정 등 일련의 한화(漢化) 조치로 점차 중국식 이름이 보급된다. 그 뒤 고려 문종 때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급제할 자격이 없다는 봉미제도(封彌制度)가 시행된 때를 성씨가 지배계층에 본격 보급된 시기로 본다.


2.성과 씨의 차이
성(姓)은 출생의 혈통을 나타내는 집단의 칭호이다. 한자의 뜻을 풀어놓은 중국 최초의 자전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姓은 人之所生也"로 모계 시대에는 모계 혈통을, 부계 시대에는 부계 혈통을 나타내는 표지로 쓰였다. 한국에서는 부계 혈통의 표지로 쓰여 법률상 일생 동안 바뀌는 일이 없었다. 이에 대해 씨(氏)란 동일 혈통의 사람들이 각지에 분산될 때 각 지역에 분산된 일파를 표시하기 위한 표지이다. 즉 씨는 핏줄이 아니라 땅과 연계되어 있는 개념이다. 한국에서 성은 오늘날의 성으로, 씨는 본관으로 연계되었다.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성명(姓名)이라고 하는 데 비해 일본인의 성과 이름은 총칭하여 시메이(氏名)라고 하고 대부분 지명과 관련이 깊다.
대한민국에서는 현재 274개의 성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든 성씨는 한자로 표기할 수 있다. 그 중에는 한글로 표기했을 경우에는 정(鄭, 丁)처럼 동음이성인 것도 상당히 있다. 각각의 성씨는 본관을 갖는데 본관은 그 시조가 자리 잡은 고향을 나타낸다. 한편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본관은 김해 김씨이다. 각각의 성씨는 대부분 그 성씨 및 본관의 유래에 관한 설화를 갖고 있다. 본관의 유래를 중국에 둔 성씨가 많으나 이는 후대에 가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조를 중국의 역대 왕조와 연관지은 경우가 많아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혈연적 연관 가능성은 희박하다. 서양식 이름에 보이는 가운데 이름(Middle Name)이나 부칭(父稱) 등은 없다.


3.논란
조선 말기까지 성씨를 가지지 않은 인구가 전체 인구의 70% 정도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조선 후기의 장적, 호구 단자, 수원성 축조시의 임금 노동자 기록, 소송 문건 등을 분석해 보면 일반 평민은 물론이고, 노비도 성씨를 가지고 있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본관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성관(姓貫)이었는지는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나, 70%라고 추정되던 확률은 상당히 낮아질 여지가 있다. 일본은 무사(武士)계급만 성을 가질 수 있어 성이 없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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